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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석 작가의 병영일기 연재(5회)] 서울, 논산, 광주..<입소식>
<입소식> 3월 2일, 오전에 논산훈련소 대연병장에서 입소식이 있었다. 아침을 먹자마자 대연병장으로 가 거의 3시간 동안 경례 연습과 악을 쓰며 선서 연습을 하고 사열식을 연습했다. 마침내 11시가 되자, 전부일 훈련소장을 태운 찦이 나타났다. 찦 앞범버에 붙은 붉은 별판에는 흰 별 세 개가 붙어 있었다. 연습한 대로 훈련병 대표가 반짝반짝 빛나는 지휘봉을 들고 단상에 올라선 전부일 중장에게 오른 손을 들고 \"나는 대한민국의 육군으로써......선서합니다!\"고 외치면 역시 오른 손을 들고 있던 우리들이 모두 \"선서합니다!\"고 악을 써야 했다. 선서의 내용은 \'30개월 동안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 걸고 충성하겠다\'는 뭐 그런 내용이었다. 선서가 끝나자 짤막한 훈시를 끝낸 전부일 훈련소장이 단상을 내려와 훈련소 군악대의 음악에 맞춰 대오를 이룬 우리 앞을 지나갔고, 맨 앞줄에 서있던 나는 중대장의 \"우로 봣!\" 구령에 맞춰 절도 있게 오른쪽에 나타난 훈련소장에게 고개를 돌렸다가 그의 진행에 따라 왼쪽으로 고개를 움직이다 정면에서 멈추는 것이 사열식의 핵심이었다. 다시 단상에 올라선 전부일 훈련소장이 \"사열 끝!\"이라고 말하고 우리는 \"충성!\"이란 우렁찬 고함과 함께 경례를 부치는 것으로 3시간 넘게 연습한 입소식은 20분도 채 걸리지 않아 끝났다. \'3월 2일, 선서와 사열이 있었던 입소식을 거행하였다\'면 끝났을 행사를 왜 이리 장황하게 쓰느냐고 의문을 갖는 분도 계실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날 있었던 입소식을 통하여 나는 절대권력의 상징인 국가의 약속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고래고래 악을 쓰며 선서한 30개월의 약속은 오간데 없이 언제부터인지 복무기간은 슬그머니 36개월로 늘어났고, 제대를 1971년 1월 28일에 했으니 선서와 상관없이 정확하게 35개월 이틀을 한 셈이다. 그리고 도장값 30원과 군번줄 값을 뺀 170원의 첫봉급을 받은 3월 10일이 며칠 지나 내무반에 걸려 있던 훈련소장 전부일 중장의 얼굴이 소장 박남표로 바뀌었다.   박남표 소장은 전부일 중장이 개혁을 시작한 논산훈련소를 본격적으로 개선한 인물이라는 후일의 평가였다. 그리고 나는 실제적으로 그 개혁을 경험하게 된다. 김은정(hojeong52) [2003-08-22 오후 8:49]   저는 논산 23연대 출신입니다. 전화번호는 잘 까먹으면서도 그런 기억은 왜 이리도 생생한건지.. 전 평발임에도 3년간 착실히 복무했읍니다.ㅎㅎ 당시 논산훈련소에는 23연대 25연대 26연대 27연대 28연대 29연대 30연대가 있었지요. 26연대는 후반기 4주 교육을 시키는 곳이어서 훈련병을 대상으로 하는 연대는 6곳이었습니다. 군대에서 4자는 결사적으로 피해 24연대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의 논산 훈련소는 특기병만 간다더군요. 허허허 23연대가 아마 \'훈련받으나마나\'가 아니었던가요? 편하다고, 허허허허...... 송범섭(songbumsub) [2003-08-22 오후 8:52]   저는 논산 30연대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화장실이 오픈되어 있는 그 시절이 생생하답니다. 옆에서 일보고 있는 것을 같이 보면서..... 저런......재작년엔가 광개토대왕비를 보러 갔던 중국에서 물버리러 들어갔던 백두산 입구의 공중변소에서 논산훈련소의 화장실을 연상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문이 없더군요. 돌아오기 위하여 심양국제공항에서 빈둥거리다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경비대 모자를 쓴 중국인이 문을 열어놓고 힘을 주고 있어 아직 중국은 논산훈련소 수준이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었습니다. 화장실에 문이 없는 건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서였을 겁니다. 25연대 화장실은 앉으면 얼굴이 보이는 반쪽짜리 문이 달려 있었습니다. 푸세식 변소에 앉아 빵을 먹는 훈련병도 있었고, 모자를 벗어 손에 들고 힘을 주는 것이 상식이었죠? 모자 잃어버린 녀석들이 모자를 보충하러 화장실을 방황하는 시절이었으니까요. 허허허허....... 30연대가 교장과 멀리 떨어져 있어 학과장 출발이 워낙 빨라 \"자나마나\"연대가 아니었던가요? 이풍호(whimoon59) [2003-08-23 오전 2:11]   저는 37예비사단 출신입니다. 군대갔다왔다면 미국사람들이 다들 존경해줍니다. 미국과 자유를 지켜줬다고요. 그래서 웃으며 코리아 육군이라고 하면 이상하게 쳐다들 보지요. 나 참...   37예비사단이라면 아마 증평에 있는 훈련소로 추정되는데...... 예비사단에서도 육군 이등병이 생산된다는 사실을 안 건 광주에 가서였습니다.   해병대들이 모두 상남훈련소를 거치듯 대한민국 육군들은 모두 논산에서 생산되는 줄만 알았죠. 대한민국은 넓고 훈련소는 많다? 58회 동기중에 김우헌이란 친구가 있습니다. 별명이 허물인데 아버님이 미8군 문관이셨죠. 인하대학 합격자 발표를 보러 동인천역에서 내려 역 앞에 있던 당구장 마크를 보고 한 게임만 치기로 한 당구장에서 밤을 맞아 헐레벌떡 달려간 인하대학 합격자 명단이 어둠 때문에 보이질 않아 벽에 붙은 물통을 타고 올라가 성냥불로 합격자 명단을 확인하다가 물통이 떨어져 다리를 삐었다는 친구인데...... 합격 여부요? 입학 전서부터 학교 기물통을 파괴시키는 학생을 받아줄 리 없었죠. 허허허허...... 아무튼 그 미국 가기 어렵던 70년대에 아버지가 미국을 7번 보냈죠. 별명처럼 허물거려 한국에서의 생존을 믿음직스러워 하시지 못하신 아버님은 허물을 미국에 열심히 보냈는데 역시 허무하게 6번을 6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귀국하여 1976년에 7번째 비행기표를 주시면서 이번에도 돌아오면 집에 오지 마라, 와도 집에 들이지 않는다고 하셨는데도 그는 1977년에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서른이 된 그를 집안에 들이지 않을 수가 없으셨다더군요. 7번째는 미군복을 입은 G.I가 되어 귀국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허허허허....... 미국을 보내기 위한 조건인 군필을 목적으로 아버님께서 일찍이 공군에 강제 지원시켜 군복무를 마치게 했는데.... 미국은 징집제라 이민간 젊은이들이 군대를 지원하면 당장 시민권부터 나온다더군요. 결국 허물의 아버님이 항복하셔 한국에서 제대를 했죠. 제대를 신청하자 시민권은 박탈되었고, 제대를 하면서 \'미재향군인의 권리\' 포기를 선서했다더군요.   군더더기 글: 대한민국 육군 훈련병들이 다 겪은 훈련의 내용을 쓰려고 시작한 건 아닙니다. 훈련 내용은 필요할 때 등장하겠지만 거의 무시될 겁니다. 오늘은 이 정도에서 그치고 다음 제목은 <후레바를 기억하십니까?>입니다.   미리들 논산훈련소의 후레바를 기억해보시기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