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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석작가의 병영일기]서울,논산,광주<입영 전야>(두번째얘기)
<입영 전야> ...서울을 떠나던 날에도 눈이 내렸었다. 수색에서 출발한 입영열차는 지도에서조차 낯선 간이역들만을 골라 오래 동안 눈을 맞으며 멈춰서서 꼬리에 눈보라를 달고 멀어지는 기차들을 배웅했었다. 정지해 있던 시간이 더 길었던 열 세 시간의 지리한 여행 끝에 논산에 도착한 장정들은 무릎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며 생소한 양옆을 팔짱끼고 줄을 지어 수용연대로 들어갔었다. 수용연대 정문을 지날 때 뒤에서 누군가가 신음처럼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설마 30개월 동안 자유가 우릴 잊지는 않겠지?\" 단편소설 <프로스트의 숲>에서 1968년 2월 21일의 기억을 나는 이렇게 썼었다. 1월 24일이든가? 아침에 매리 어머니께서 들르라는 전화를 주셨다. 그달 가정교사비를 주시려는 걸로 짐작이 갔다. 그때 한달 가정교사 비용으로 정한 가격이 5천원이었다. 남을 가르친다는 것을 생래적으로 싫어 하여 거절했으나 어머니와 친구이신 매리의 어머니께서 5천원을 제시하는 바람에 \'돈에 눈이 멀어\' 시작한 가정교사였었다. 그때 시중 가격이 3천원이었으니 눈이 멀 만도 한 가격이었을 것이다. \"군대 간다며? 그동안 수고했어. 아휴, 군대 안 가면 매리 동생도 부탁하려고 했는데......\" 매리 방에 건너와 봉투를 열어보니 2만원이 들어 있었다. 돈이 더 왔다고 말씀드렸더니 \"군대 간다면서 친구들하고 쓸 데도 많을 텐데......\" \"고맙습니다!\" 교복비까지 포함해서 낸 대학 입학비용이 1만2천7백원이었고, 개봉관 입장료가 120원, 무교동 낙지 한 접시가 70원, 막걸리 한 되가 15원, 좌석버스 요금이 30원, 아리랑 담배가 15원이었던 걸 생각하면 2만원은 실로 거액이었다. 한달이 채 남지 않은 기간 동안 마시고 마시고 마셔도 남을 것 같은 2만원이었다. 그러나 화수분 같이만 느껴지던 거액도 2월 19일 저녁에는 바닥을 드러내 마시고 헤어지다 버스비를 58회 최승렬 군에게 얻어야 했었다. 2월 20일 아침, 군입대를 알려야 할 최후의 한 사람에게 아꼈던 전화를 했다. 너무 많은 독서로 시력이 안 좋으셔서 돋보기를 두 개씩이나 끼시고 철학 개론을 강의하시던 정종 교수님(정년퇴임을 앞두시고 결국 실명)은 출석 부른 후, 도망가는 녀석들의 탈출로를 봉쇄하시려고 자물쇠로 강의실 앞뒷문을 잠그시곤 하셨는데, 그 첫강의 시간에 뒷문을 잠그시려는 순간 들어선 나를 불러내시어 대신 출석을 부르게 하셨다. \'朱良又\'란 이름을 \'주양또\'라고 불러 강의가 끝난 다음 왜 남의 이름을 그런 식으로 개명하냐고 걸어온 시비를 계기로 땡땡이도 함께 치고 \'한때 내 젊음이 야영하던 막걸리잔\'을 사이에 두고 무교동 실비집에서 자주 마주 앉았던 주양우에게였다. 술값이 바닥나서만은 아니였다.   어떻든 2학년 첫날에 보이지 않는 내가 군대에 있음이 알려지겠지....... 대학 1년 동안 나의 절망을 가장 많이 경청해준 그녀는 강의실에서 교양과목들을 들을 때만 만나는 영문과 학생이었다. \"나 내일 군대 가!\" \"어머머, 그런 법이 어딨어?\" \"어딨긴? 대한민국에 있잖아!\" \"술은 한 잔 하구 가야 될 거 아냐?\" 명동의 을지로 입구 쪽에 있던 크래식 음악만 틀어주던 설파에서 우리는 다섯 시에 만났다. 양우는 그러지 않아도 전화하려던 참이었다며   방학 동안 편입시험을 3곳을 보았고, 결국 새학기부터 경희대학 국문과를 다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가 그렇게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늘 국문과생인 나를 부러워 했고, 가끔 시를 끄적이던 그녀였다. 그렇구나, 나는 죽으러 가는데 너는 희망을 찾아가는구나! \"야야, 시간 아깝다, 가서 마시자!\" \"기다려, 올 사람 있어!\" \"설마 우리 학교 애들 아니겠지?\" \"나하고 고등학교 동창이야!\"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 2악장이 흐르고 있었지, 아마....... 그때 그 여자가 들어왔다. 옅은 노란색 버버리를 입고..... 짙은 담배연기로 흐린 조명을 더욱 어둡게 하는 그 설파를 들어선 그녀를 나는 단번에 우리가 기다리는 그녀임을 알아보았다. 실내를 둘러보던 그녀가 곧장 구석진 우리 자리로 와 앉을 때, 나는 말했다. \"어휴, 추워!\" 그랬다, 크리스탈처럼 투명한 그녀는 추워 보였다. 미완성 교향곡을 3악장까지 다 듣고 명동 무진장에서 무진장으로 마셨다. 그러나, 성기숙이란 그녀는 받아놓은 첫잔이 마지막 잔이었다. \"죽어가기 위하여 모인 친구들이 마시고 있네\" 아마 무수히 오간 술잔의 어딘가쯤에서 막걸리를 손가락 끝에 찍어 술상에 쓴 즉흥시는 이렇게 끝이 났던 것 같다. \"살아 있는 것들이여, 부스러진 희망들이여 잘 있거라 이제 활짝 열린 무덤을 향해 나는 출발하네.\" 즉흥시의 기억을 마지막으로 입영 전야의 술자리가  어떻게 끝났는지  기억에 없다. 입영 열차가 출발할 무렵 수색역에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차창 너머의 눈발이 흩날리는 풍경 속에서 나는 문득  옅은 노란색 버버리를 보았다. 그 옆에 주양우가 서 있었다. 그리고 이내 그들은 멀어졌다. 일상의 내 삶들과 함께.....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