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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50주년 아주그룹 문규영(62회) 회장 매일경제 인터뷰
문규영회장 "잘 나갈때 다음을 준비… `변화`가 우리의 DNA"

"실수 줄이려 열심히 공부… 모르면서 하는일 가장 나빠"




-먼저 아주그룹 창립 5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아주그룹이 지난 50년간 발전해온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아주그룹 50년 역사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변화와 혁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건자재 사업을 예로 들면 콘크리트 지주를 만들 때 안주하지 않고 그 기술을 활용해 아파트 기초 파일을 만들고 도시 배수관을 만들었다. 단순 제품을 응용 제품으로 만들고 기술을 발전시킨 셈이다. 아주그룹 임직원들은 이처럼 `변화`라는 유전자를 갖고 있다. 이것이 아주그룹의 힘이다.

-아주그룹은 건자재 사업으로 성장해왔다. 현재 건자재 사업이 어려운데 건자재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복안이 있나.

◆1990년대 중반 레미콘 전성기 때 아주그룹이 레미콘 분야에 더 투자했으면 지금쯤 레미콘 분야 절대 강자가 됐을 것이다(현재 아주산업은 레미콘 분야에서 국내 3위다). 하지만 당시 레미콘사업이 한계를 맞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잘나가고 있을 때 다음을 대비하지 않으면 회사가 곧 동력을 잃게 된다.

솔직히 말해 건자재 분야는 국내에서 양적 성장은 힘들다. 따라서 공간을 확장해 외국으로 나간다. 이미 베트남에 레미콘 공장을 지었고 캄보디아에도 전신주 공장을 만들고 있다. 건자재 사업 분야에서 50년 동안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 도전할 것이다.

-아주그룹은 1987년 호텔서교를 인수하면서 사업 다각화를 시작했다. 신규 사업을 결정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한 원칙은 무엇인가.

◆건자재, 금융, 물류가 얼핏 보면 관계가 없는 사업처럼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다 관련이 있다. 신규 사업을 결정할 때 아주만의 핵심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인지 고려했다. 예를 들면 레미콘 사업 특성상 전국 곳곳에 공장을 갖고 있다. 부동산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호텔과 냉동창고업에 진출한 것도 부동산을 보는 눈이 밑바탕이 됐다. 외환위기 당시 보유 자본으로 창업투자회사를 설립했다.

이후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계측기를 빌려주는 렌탈ㆍ리스업에 진출했고 이를 바탕으로 렌터카 시장에 뛰어들었다. 렌터카 사업을 시작하면서 자동차 할부금융까지 진출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 새로운 50년을 이끌어나갈 비전과 경영전략은 무엇인가.

◆올해로 아주그룹에 발을 내디딘 지 28년째다. 나는 릴레이 2번 주자다. 내 임무는 아주그룹이 100주년으로 가기 위 한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고 차세대 인재를 발굴하고 양성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사업 분야로는 금융업 확장과 농업 분야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금융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기 위해 현재 저축은행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W저축은행 지분 32%를 펀드 형태로 아주가 보유하고 있는데 2년 뒤엔 펀드가 해산한다. (2년 후에)W저축은행을 인수할지, 아니면 다른 저축은행을 인수해 W저축은행과 합병할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매일경제신문이 올해 제안한 `아그리젠토`에 굉장히 공감했다. 앞으로 식량이 중요한 자원이 될 것이다. 최근 아프리카 수단에 다녀왔다. 현지 대기업과 나일강 유역에 농토를 개발하기로 거의 합의했다. 몇백만 평에 달하는 면적이지만, 우선 1차로 6100㏊ 규모로 사료작물인 `알팔파`를 재배할 예정이다.

-사회생활을 대우에서 시작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대학 졸업 무렵 문태식 명예회장(문규영 회장 부친)께서 큰 회사에서 경험을 하고 왔으면 좋겠다고 권유했다. 대 학 졸업 후 (주)대우에 입사해 5년간 다녔다. 처음에는 섬유파트에서 일했고 3년을 런던지사에서 보냈다. 당시 대우는 세계화를 하는 기업이었다.

-본인 경영스타일에 대해 스스로 어떻다고 평가하나.

◆때로는 공격적, 때로는 보수적이라고 생각한다. 골프 칠 때는 공격적이다(웃음). 골프를 통해 내 스트레스를 해소 하려는 경향이 있다. 감당할 수 있는 일에는 공격적이다. 하지만 감당하기 힘든 일에는 보수적이다.

참고 가능하면 위험한 환경에 안 들어가도록 굉장히 노력을 많이 한다.

-문 회장은 공부하는 CEO로 잘 알려져 있다. 매경 세계지식포럼에도 매년 참가하고 있다. 이처럼 공부를 열심히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학교 다닐 때는 아버님이 공부하라고 한 적이 없다. 그 대신 경험을 쌓게 했다. 학창 시절에는 여행 다니고 친구를 사귀었다. 사회에 나와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공부를 하는 이유는 경영을 잘하기 위해서다. 나 자신부터 역량을 갖춰야 했다. 경영에서 실수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공부가 필요했다. 지금 돌아보면 내가 예전에 범했던 실수는 대부분 몰라서 당한 것이다. 실수를 줄여야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 회사 임원이라면 6은 공부하고 4는 일해야 한다. 일반 직원은 5대5 비율로 해야 한다. 모르는 사람이 일을 하는 것이 가장 나쁘다.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는 기업이나 CEO는.

◆잘되고 있는 기업은 늘 눈여겨본다. 잘되는 기업과 아주를 비교한다. 뒤지는 부분은 없나 늘 관찰한다. 벤치마킹 대=이라면 GE와 웅진그룹을 들고 싶다. GE 연수원인 크로톤빌에도 다녀왔다. GE 조직과 인사, 글로벌화를 본받고 싶다. 웅진그룹 경영 스타일도 눈여겨보고 있다. 회장부터 아이디어가 넘치고 창의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는 것 같다.

-끝으로 문 회장에게 명예회장은 어떤 존재였나. 3형제가 분가 과정에서 잡음 하나 없을 정도로 우애가 각별하다. 그 비결을 공개한다면.

◆명예회장은 성실하고 기업에 당신 인생 최대 가치를 부여한 분이다. 기업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기업 성장을 위 =해 최선을 다하셨다. 가정의 화목과 행복을 위해서도 노력하셨다. 지금도 나를 포함한 3형제와 누이동생 둘까지 매주 일요일 저녁식사를 아버님 댁에 가서 한다. 몇십 년 된 전통이다. 늘 가족끼리 자주 만나고 대화하니까 오해하지 않고 이해를 많이 한다. 그런 분위기를 부모님이 만들어주셨다.

■ He is...

1951년 서울에서 아주그룹 창업자인 문태식 명예회장의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문 회장의 경영철학은 `변화와 혁신`이다. 취임 이후 줄곧 임직원들에게 변화를 강조해왔다. 그는 아주그룹 경영을 맡은 이후 건자재에 집중된 포트폴리오를 금융 부동산 물류 레저 분야로 넓혔다. 그는 손댄 사업마다 성공시켜 재계에서는 `미다스의 손`으로 통한다. 회사의 대주주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배당을 받아본 적이 없다. 배당할 돈을 회사에 재투자했다는 얘기다. 문 회장과 형제 간 각별한 우애도 재계에서 유명하다. 첫째 동생 문재영 신아주그룹 회장과 막내동생 문덕영 아주L&F가족 사장은 잡음 하나 없이 문규영 회장과 계열 분리를 마쳤다.

△1951년 서울 출생 △휘문고 △고려대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명예 경영학박사 △1978년 (주)대우 입사 △1983년 아주산업 이사 △2002년~현재 한ㆍ중경제협회 회장 △2004년~현재 아주그룹 회장 △2005년~현재 한ㆍ중 우호협회 부회장

[백순기 기자 / 사진 = 이충우 기자]